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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축복인가 재앙인가]플라톤은 왜 민주주의를 경멸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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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3-04-25 13:28 조회 76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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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민주주의가 한창이던 시대의 아테네 시민으로 살던 철학자이다.

그는 당시의 아테네 민주주의자들이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한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가 민주주의를 경멸한 것은 단순히 개인적 분개로 인한 것은 아니다.


그가 민주주의를 경멸한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국가는 귀족주의의 국가를 유지하지 못하여 타락한 수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즉, 그의 설명으로는, 우수한 이성의 능력과 지혜를 소유한 사람들이 다스리는 귀족국가가 욕망에 지배되는 열등한 대중이 다스리는 민주국가로 타락한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국가론(Republic, BK VIII)에서 정치체제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귀족정체(Aristocracy), 공명정체(Timocracy), 과두정체(Oligarchy), 민주정체(Democracy), 잠주정체(Tyranny) 등이다.

민주정체는 귀족정체에서 타락하는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인 잠주정체를 낳는 바로 직전인 네 번째 단계에 있다. 이러한 구분은 전체로서 국가등급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한편으로 감각적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궁극적 실재(實在)인 이데아(idea)의 세계를 상정하는 형이상학에 기초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그 세계에 대한 개체 인간의 인식능력을 포함한 인성적 구조의 특성을 언급하면서 설명되고 있다.

플라톤은 사람들을 크게 세 등급으로 구분하였다.

첫째는 금(金)의 영혼을 가진 등급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이성(理性)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다. 둘째는 은(銀)의 영혼을 가진 등급에 속하며 기개(氣槪)의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고, 셋째는 동(銅)이나 철(鐵)의 영혼을 가진 등급에 속하고 욕망(欲望)이 주도하는 사람이다.

세 가지 등급의 영혼이 각기 계발하는 덕성은 그 범위에 있어서도 다소 차이가 있다.

이성이 주도하는 금의 등급에 속하는 계급은 지혜와 용기와 절제의 덕성을 균형 있게 구비하고, 기개의 소유를 특징으로 하는 은의 등급에 속하는 계급은 용기와 절제의 덕성을 겸비하며, 욕망에 지배되는 동(혹은 철)의 등급에 속하는 계급은 주로 절제의 덕성을 지니며 생활한다.

"귀족정치”는 금의 영혼이 이성의 작용으로 이데아를 탐구하고 지혜의 덕성을 소유한 상태에서 국가의 통치에 종사하는 체제이다.

이때 은의 영혼은 기개의 작용으로 용기의 덕성을 발휘하며 나라의 방위에 종사하지만, 귀족정체가 타락하면 국가의 통치를 맡기도 한다. 이 경우가 “공명정체”이다.

이보다 한 단계 더 타락하면 금권을 추구하는 부유층이 지배하는 “과두정체”(혹은 금권정체)로 된다.

그러나 과두정체의 질서가 무너지고 하층 계급이 점점 증대하면 결국 빈곤층이 민중의 자리를 독점하는 승리자가 된다.

욕망의 충족 자체를 즐기는 수준으로 기울면, 동이나 철의 영혼이 지배하는 민주정체가 자리를 잡는다. 민주정체는 과두정체가 한 단계 더 추락하여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체제로 바뀐 것이다.

민중의 승리자, 즉 민주적 승리자는 다른 편의 일부를 죽이고 일부를 추방한 다음, 나머지 시민들에게는 평등하게 시민권과 관직을 배정한다.

바로 과두적 아들인 민주주의자도 자신의 욕구를 끝없이 추구한다.

다만, 과두주의자들은 주로 필요한 욕구, 즉 본능적으로 혹은 생존을 위하여 추구하는 “필요한 욕구”이지만, 민주주의자들은 재물에 대한 탐욕과 같이 절제의 필요를 넘어 선 “불요불급한 욕구”까지 분별없이 추구한다.

민주정체에서는 사람들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상태에 있다. 통치에 종사하거나, 방위자의 대열에 참여하거나, 평화롭게 생산활동을 즐기거나 간에, 누구의 통제도 간섭도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만약에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면, 관직을 맡거나 배심원 노릇을 하는 것을 아무도 강제적으로 제약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통하여,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각자가 어떤 형태로든지 각자의 마음에 드는 삶의 방식을 찾고 거기에 따르는 개인적인 대책을 세우면서 살아 갈 수 있으니, 참으로 놀랍고 신나는 삶을 누리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통치체제에서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생겨나므로, 마치 온갖 꽃의 수를 놓은 다채로운 외투처럼, 온갖 특징을 가진 장식이 있어서 어느 정체보다도 더욱 화려하게 보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생활의 차원은 이렇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의 문제는 따로 있다.

이 대목에서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면, 누가 선장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가를 물으면서 민주주의에 관해서 경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 : 에듀인뉴스(EduinNews)(http://www.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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